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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사이 / 2013
A good enough relationship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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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한 사이 퍼포먼스 기록



적당한 사이 A good enough relationship


적당하다는 말은 정도나 양이 알맞다는 뜻과 동시에,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 있다는 애매한 범위의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평범한 말들과 움직임을 작동시켜 공동체가 암묵적으로 적당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지점을 포착해 보고자 하였다.
<적당한 사이>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적당한 지점을 찾는 모든 과정의 기록과 그 결과물로서의 퍼포먼스의 영상 작업을 모두 포함한다.
참여자들은 자세한 정보를 모르는 채 이 작업에 참여 의사를 밝혀 주었고, 우리 역시 그들의 성별 외에 어떠한 조건으로도 선정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는 그들이 전문 무용수가 아니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적당한 사이>에 참여한 8명의 퍼포머들은 몇몇의 실험과 대화를 통해 관계 맺기를 위한 자신만의 법칙을 이끌어내었다. 그리고 이것은 일종의 공동체 미니어쳐 모델을 작동시키기 위한 규칙으로 실행된다.
그렇게 나온 문장들은 다음과 같다.

쉽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노력하는게 싫지 않을 뿐이지 /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그냥 이렇게 하는거야 / 생각해 보니 그래요 / 지금은 개인적으로 한시적인 허용할 수 없는 터무니 없지 않은 영원하지 않을 상대적 간격 설정 / 가까워지기도, 멀어지기도 / 눈을 맞출 수 없는 우리 사이 / 이 정도는 괜찮다고 말하는 불편함 / 내가 여기 있는게 맞는건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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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8개의 문장들은 그들이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발휘되는 자신만의 노하우이거나, 실패했던 경험들로부터 나온 회의감, 혹은 앞으로의 바램을 담은 다짐 같은 것들이다. 이것들은 시와 같은 느낌을 전달해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상 대화에서도 흔하게 등장하는 표현들이다.
각각의 문장들을 모티브로 단순한 움직임을 만들었다. 손발을 뻗거나 뛰기도 하지만 대체로 걷는 시간이 긴, 특별할 것 없는 동작들이다. 그러나 이 개별적인 움직임들은 나머지 7명과 관계를 맺으며 복합적인 구성으로 변화한다. 게다가 이들은 미리 구성된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자신의 동작에 집중해야 할 뿐 아니라 우연찮게 옆을 지나치거나 앞을 가로막는 누군가의 움직임에도 집중하여 적절하게 반응해 주어야 한다. 전문 무용수가 아닌 이들의 설익은 몸이 오히려 자신과 상대방의 몸에 긴장하며 반응하게끔 만드는 장치가 된다.
이 퍼포먼스의 처음과 끝은 정해져 있지 않다. 퍼포머들 중 누구든 시작하고 싶은 순간에 시작하고, 끝내고 싶은 순간에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서로 눈치를 보며 적당한 순간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퍼포먼스가 잘 작동되도록 만드는 것은, 상대방의 기대에 적절하게 반응하고, 전체의 분위기에 눈치껏 동의하는 적당한 사이의 움직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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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사이 퍼포먼스 스틸(위)과 퍼포먼스 드로잉(아래)



각자를 위한 적당한 양, 모두를 위한 동일한 양, 그리고 모두를 위한 적당한 양


우리는 <적당한 사이>의 퍼포먼스를 위해 워크샵을 함께 하였다. 물을 따르는 간단한 동작을 응용한 이 워크샵은 사실 <이로운 사이를 위한 피크닉> 참여자였던 O양의 제안으로 구성되었다. 8개의 동일한 컵을 준비하고, 모인 8명의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적당한 양의 물을 따르게끔 하였다. 아래의 사진에서 보듯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적당함의 기준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개중에는 아주 비슷한 것도 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큰 편차를 보여주었다.
두번째로 다시 이 컵에 담긴 물을 하나의 큰 비커에 옮겨담고 다시 8개의 컵에 동일하게 나누어 따르게 하였다. 순서는 따로 정하지 않았고, 처음에는 비커에서 물을 나누어 따르다가 차츰 서로의 컵에서 물을 덜거나 더 따르는 식으로 모두 만족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렇게 고르게 나누어진 물의 양은 일종의 평균값을 나타내지만, 사실 첫번째 진행했던 누구의 기준도 만족시킬 수 없는 애매한 지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는 다시 물이 담겨있는 비커와 하나의 컵이 제시되었다. 8명은 처음 생각했던 본인의 기준에 따라 적당한 양의 물을 따른다. 마찬가지로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각자의 기준에 따라 컵의 물을 더 따르거나 덜게 된다. 이 과정이 여러번 반복되면서 누군가는 포기하거나 혹은 자기 자신을 이해시키며 자신의 기준을 완화시켜갔고, 그렇게 8명을 위한 적당한 양의 기준이 새롭게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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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사이의 워크샵 기록


적당한 사이의 워크샵을 진행하다 보니, 공통적으로 관계의 간격에 대한 고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각자에게 적당한 간격, 간단한 비유로써 사람을 마주보고 섰을 때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의 측정을 부탁하였다. 그 결과 나온 물리적 간격으로 각목을 재단하고, 서로 맞물리게 기대어 전시장 한 켠에 놔두었다. 강제로 접착되지 않은 이 각목들은 실제로 종종 무너진다. 그리고는 다시 임의적인 형태로 만들어진다. 이렇듯 우리가 만든 합의점이라는 것은 실제로 아주 무너지기 쉽고 우연적인 결과물이다.
<적당한 사이>는 일전에 진행되었던 <이로운 사이를 위한 피크닉>과 <여-어느대화>, 그리고< 몸으로 말해요>와 같은 소규모 워크샵을 통해 과정이 결정되고, 예상치 못한 결과물로 나타나게 되었다. 시작과 끝이 정해지지 않은 퍼포먼스와 마찬가지로, 적당한 사이는 이 네 개의 각기 다른 워크샵에 영향을 받으며, 우리 스스로도 작업의 과정을 조절해 나가는 적당한 지점을 찾는 기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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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한 사이 퍼포먼스 기록, 2채널비디오, 8분 15초


▲ 각자를 위한 적당한 양, 모두를 위한 동일한 양, 그리고 모두를 위한 적당한 양, 단채널비디오, 16분



KKHH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