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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순간, 플레이스막/ 2012
Romantic Moments, placeMAK/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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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의순간_플레이스막_2012



 

낭만의 순간

 

재미없는 이야기는 전부 저기 미뤄두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해보자. 사람은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평소엔 점잖아 보이는 사람도 가까운 누군가와 커피숍에서 큰 소리로 짙은 농담을 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모를 일들이 강지윤+장근희 작가가 수집한 대화에 기록되어 있다. 머리가 새하얗게 샌 할아버지들이 가래 끓는 소리로 여자에 대해 이야기 한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여자를 어떻게 하면 따먹을 수 있을까에 대해 비-학술적 언어로 논하는 장면이다. 한편, 앞선 대화에 언급되는 여자들을 어머니로 모시고 있을 법한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성들이 술집에서 일상의 고역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어렸을 적 커리어 우먼을 꿈꾸며 자랐을 이 세대의 여성들은 비루한 오피스 걸 정도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아쉬워한다. 그저 아쉬워하고 아쉬운 마음을 공유하고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되버렸을까 조금 고민하다 술자리를 끝낸다. 할아버지들도 한창때의 젊은 여성들도 요점이 동일한 이야기를 1mm씩만 옮겨서 매일 주고받는다. 매일 말한다는 것은 그것을 모른다는 뜻이다. 모르기 때문에 말이라는 매체를 사용해서라도 알기 위해 계속 탐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상의 대화들은 순간적으로 소모되지만 대부분 중요한 것들이 많고 나아가 깊은 탐구를 위해 따지고 들면 어렵기까지 하다.
강지윤+장근희 작가가 수집한 대화를 읽으면 처음엔 웃음이 나지만 갈수록 읽는 행위가 고역스럽다. 가끔 내가 타인을 언급할 때 하는 말과 가끔 타인이 나를 언급할 때 하는 말이 대화록에 섞여있다. 결국 대화록에 적힌 그대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 않나 나에게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화록은 중요하고 대화록을 읽는 우리의 행위도 중요하다. 한 팀으로 활동하는 강지윤, 장근희 작가는 오랜 시간 녹음-녹취한 대화를 각자의 작가적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공공의 장소에 뿌렸다. 뿌리는 행위를 영상 및 사진으로 기록하여 그 기록을 다시 플레이스막 전시 공간에 뿌린다. 한 번도 타인에 의해 걸러지지 않은 음성 대화부터 시작해 몇 번이고 작가들에 의해 재해석된 영상까지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전시는 반드시 작업의 정수를 정리해 보여줘야 한다는 전시문법에 의문을 갖는 강지윤+장근희 작가는 흘러가는 일상의 대화를 흘려보내는 전시 방식으로 플레이스막 공간에 투사할 계획이다.
(placeMAK 큐레이터, 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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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_전시장 내 기둥으로 위장한 스피커_2012



일상 기념화의 낭만적 역설놀이

"더 이상 옛 파리는 없다. 도시의 변화는, 아아, 인간의 심장보다도 빠르구나."

보들레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빠른 변화를 탄식하던 보들레르의 말 처럼 급속도로 변화를 꿈꾸고 진화해왔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한국의 자본주의적 근대화와 도시화 양상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속성을 지녔다는 것에서 여느 도시와 다를 바가 없다. 단지 '서울'이라는 고유의 지명과 역사를 가졌을 뿐이다. 도시의 끊임없는 개발의 욕구와 더불어 개인의 일상을 지배하려는 공공성의 권력은 개인성을 조직화하고 감시하며 짜인 방식으로 삶을 소비하게 한다. 이 도시는 어쩌면 드보르의 말처럼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만이 허용된 미궁"일지 모른다.
강지윤, 장근희는 이 미궁 같은 도시 속에서 낭만의 순간을 찾으려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도시의 지배를 받는 개인의 일상에 존재하는 낭만의 순간을 찾으려고 했다. 작가가 선택한 개인의 사적인 대화는 어떤 낭만성을 부여받은 채 도시의 틈에서 변주되었다. 일상에서 흔히 발화되는 대화의 음성과 텍스트는 특유의 낭만적 기운을 가졌다.
이들 작업에 존재하는 이 특유의 낭만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 미술사적 범주 내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프랑스 낭만주의의 낭만과 다른 것인가?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다를 부유하는 뗏목 위에 자신의 몸을 결박하고 휘몰아치는 폭풍을 경험했던 무모한 작가¹의 열정 과 실험, 경험한 상황의 극적 표현은 분명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낭만으로 다가온다. 이 낭만을 두 작가가 발견한 낭만과 연결 짓는 것은 과연 억지스러운 것인가? 혹은 개인성의 가치와 동시에 이를 넘어서는 넓은 전체의 통합을 강조한 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아이러니'² 의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인가? 강지윤, 장근희가 발견한 일상의 낭만은 그들이 취하는 태도와 방식에 의해 낭만적 내러티브를 가진다. 또한 이것은 작업의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작업의 고정된 의미보다는 작업의 유동적인 의의에서, 그리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실험 속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가진다. 필자는 이것을 위에서 언급한 경험적 감성의 낭만과 딜레마의 양편을 아우르려는 노력으로의 낭만적 '아이러니'의 성격을 빌어 이야기하는 것에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¹ 윌리엄 터너 William Turner (1775.4.23 ~ 1851.12.19), Snow Storm: Steamboat off a Harbour's Mouth(1842), oil on canvas, The turner Collection, Tate Britain, London
²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대표 평론가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아이러니를 "어떤 종합에 도 이르지 않는 끝없는 과정"으로 간주했다고 볼 수 있다. 프레드릭 바이저 Frederick C. Beiser, 「서론_낭만주의, 과거와 현재」,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 김주 휘 역, 2011, p.24, 각주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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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전경_PVC 위에 싱글채널영상프로젝션_2012



낭만적 내러티브

그들의 태도와 방식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끊임없는 표류를 통해 도시를 관찰한다는 점이다. 현대 개인의 일상이 도시와 깊게 연관된 것처럼 작가의 작업 과정과 설치는 모두 도시의 특정 장소 속에서 이루어졌다. 작업의 실현을 위해서 그들은 끊임없는 도시의 표류를 통해 일반적이지 않은 공간들을 찾아냈다. 이 공간들은 앞서 각 작업의 비평 글에서 자세히 묘사했던 바와 같이 '틈'으로 존재하는 공간들이며 그 기능이 모호한, 사적이지 않지만 공적인 경계를 가졌다고 말하기도 시원치 않은 그런 괴이한 공간들이었다. 이 공간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아주 흔하게 존재하는 곳이지만 단수적인 개체로써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일 뿐이다. 진화를 거듭하는 도시에서 구태여 모호하고 미심쩍은 장소를 물색하는 작가의 태도는 하나의 유형이기를 자처한다.
작가들은 또한 일상을 훔쳐내는 특정한 태도를 일관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작업 <비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강지윤은 지인의 일상 속 '비밀'을 살가운 방식으로 탈취했고, <단편선/낯선 증언>에서는 공원이라는 한 장소에서 익명적 개인의 대화를 도청하고, 고정된 장소를 오가는 개인의 일상을 훔쳐보며 이를 관찰 일지로 기록하기도 했다. 작가 장근희도 <일상의 고역>, <너가 이 노래를 들려주면 나는 행복해>에서 사람들이 대화에 의뭉스럽게 침입하여 대화를 도청하고 이것을 기록했다.
이들이 실행하는 도시 '표류'와 '훔치기'는 다소 불편하고 폭력적인 태도로 보일 수 있다. 특히 훔치는 방식이 그런데 작가의 태도가 권력 감시의 체계를 표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계는 이후 작업에서 발휘되는 작가들의 편집과 선택에 의해 무참히 해체되고, 결국 이것이 찰나의 순간을 얻기 위한 순진하고 무모한 장치였음을 인식하게 된다. 오히려 작가의 태도 저변에 깔려있는 것은 일상에 대한 존경과 기념화라는 것을 그들의 변주되는 기념비적 텍스트를 통해 관객은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두 작가가 벌이는 권력적 태도에 의한 일상 기념화의 역설놀이는 표류를 통해 선택된 모호한 공간의 성격과 조합되어 고유의 낭만적 내러티브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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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선;낯선증언_석고붕대캐스팅과 관찰일지_2012



표현적 지지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두 작가가 구축할 수 있었던 낭만적 내러티브는 그들이 구현했던 '표현적 지지체'를 찾기 위해 실험하고 연구하는 과정과 함께 설정된 것이다. '표현적 지지체'라고 하면 기능적이고 전문적인 표현을 위한 테크닉을 떠올릴 수 있으나, 이것은 작가가 공유하고 싶은 미적인 느낌을 가장 적절히 보여줄 수 있는 표현의 형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연속적인 구상과 실험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다. 바로 가장 적절한 방법, 소피 칼의 작업이 사진과 텍스트의 지지체를 유지해왔던 것처럼 말이다.
두 작가의 작업은 '순간'에 대한 특유의 해석과 이 순간을 한시적으로 잡아두려는 시도의 결과물이자 과정의 흐름이다. 이 '표현적 지지체'는 선택된 일상 속 대화의 파편을 우연히 스치듯 인지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험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와 구상은 계속적으로 진화를 했다. 장근희가 텍스트의 바탕을 없애며 좀 더 미적이고 리드미컬한 텍스트의 유희를 연출하려 했던 시도와 강지윤의 <비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비밀'의 소리가 풍경 속에서 일시적으로 부 유할 수 있는 형태에 관한 고민과 연구를 했던 것 등이 그렇다.
이는 나아가 결과 전시를 구성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나타나는데, 전시 자체가 작가의 '표현적 지지체'를 실험하는 연장 선상 안에 있다는 사실에서 그렇다. 전시는 이들의 작업결과물을 단순히 공개하기 위한 아카이브 전시의 형태가 아니었다. 작가들은 전시공간이 가진 특유의 장소적 성격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음성과 텍스트가 공간에 스며 공적인 발화를 하도록 풀어냈다. 강지윤의 <비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전시 공간 내부의 기둥으로 위장하여 설치되고 '비밀'의 사운드는 들릴 듯 말듯 기둥에 갇혀진 채 공간을 부유하고 있으며 <단편선/낯선 증언>역시 도시에 설치된 문구가 아닌 새롭게 캐스팅된 시멘트 글자가(도시에서 바탕체로 설치되었다면 갤러리 공간에서는 고딕체로 표현되었다.) 전시 공간의 시멘트 바닥에 고착되어 관객의 시선을 은근한 존재감으로 이끌어낸다. 장근희의 <일상의 고역>은 전시 공간의 창문에 반사 PVC 필름을 설치해 영상 을 투사했고, 텍스트는 금속판 위를 화려하게 장식했으며 PVC 필름에 반사된 영상의 빛은 반대편 벽에 어른거리며 공간을 빛의 여운으로 잠식했다. <너가 이 노래를 들려주면 나는 행복해>는 전시공간에서 가까운 시장 내에 낡고 비어있는 벽면에 투사되었으며 전시장 안 에서는 이 모습을 작가가 인위적으로 설치한 CCTV를 통해 지켜볼 수 있었다. 이미 도시에서 한차례 진행되었던 네 작업 모두 전시와 전시 공간, 장소에 어울리는 상황, 본래 작업의 단수적 성질 등을 위한 새로운 '표현적 지지체'를 실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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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가 이노래를 들려주면 난 행복해_동진시장 내 프로젝션_2012



낭만적 실재

도라지 위스키 한잔을 낭만이라 부르는 남자, 자취 월세방 값을 선뜻 내주는 남자친구에 의해 누리는 호사를 낭만으로 여기는 여자,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음악을 낭만이라 칭하는 어르신. 그들의 낭만은 참 보편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이렇게 개인의 낭만이 일반적인, 보편적인 고립된 어떤 것이 아닌 것처럼 강지윤, 장근희의 낭만은 그들 고유의 유형으로 표현되었고 동시에 끊임없이 유형을 벗어나려 했다. 과거 화가들이 직접 경험한 것을 자신의 표현방식으로 표현했던 것처럼 두 작가가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일상을 도시 속 모호함이라는 배경과 조합하여 표현한 것을 그들의 낭만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이 전시를 통해 보여준,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시도, 고정된 틀을 벗어나려는 실험은 무위적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움직임과 변화와의 조합, 그리고 경험적 실제에 대한 작가의 '표현적 지지체'를 통해 강지윤, 장근희식 고유의 낭만성은 유유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도시의 빠른 변화 속에서 흩뿌려지는 모호한 일상 속 낭만의 순간을 고착하여 기념비적으로 도시 내에 부유하게 하는 그들의 이 같은 시도와 실험은 곧 낭만적 순간의 실재였다.

[글 / 현소영]


강지윤+장근희, 현소영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