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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순간 #1 비밀 @ 노들섬, 대부도 야외 설치 / 2012
Romantic Moments #1 Secret, Nodeul-Island, Daebu-Island Public Installation /2012

 

비밀01

▲ secret _노들섬에 야외 설치된 비밀 스피커_2012



 

‘일시적 낭만성’을 지닌 탈취(奪取)된 비밀

 

빼곡히 들어차있는 도시의 높고 낮은 빌딩들, 우리가 항상 필연적으로 맞이하는 익숙한 도시 풍경은 그곳에 없었다.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던 한화63시티(63빌딩)의 시야를 집중시키는 수직적 압도감도 작품이 설치된 곳에서 바라보면 그 모습이 어렴풋하게만 보인다. 오래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조릿대¹ 군락, 그 안에 듬성듬성 서있는 나무들이 이곳을 지나는 이들의 시야를 차지하는 풍경이다. 군락과 함께 눈앞에 이어지는 넓은 공터는 그 용도가 어떤 것인지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신기루처럼 기억 속에서 얼룩져 그 존재가 흐릿하게만 남는다. 낡은 벤치와 전봇대는 그 장소에 최소의 기능을 부여하는, 소소한 공적 장치로 존재한다. 이 공간이 작가 강지윤의 작업 <비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설치된 첫 번째 장소이다.
도시의 틈으로 존재하는 듯한 이 모호한 군락의 흙 위에 크고 작은 하얀 깔때기들이 합쳐진 모양의 조형물이 심어져 있다. 이것은 풀들 사이에서 보일 듯 말 듯 존재한다. 조형물은 사람들로부터 수집된 비밀의 내용이 담긴 음성을 발화한다. 이 음성은 바람과 함께 다른 소리와 섞이고, ‘일시적 낭만성’을 함유한 채 공간을 부유한다.

 
¹ 조릿대는 대나무 중에서 가장 작은 대나무로 우리 나라 중부이남 지방의 산에 빽빽하게 무리 지어 흔히 자란다.


비밀02

▲ secret _노들섬 설치전경_2012



'일시적 낭만'의 음성과 형식

작가의 작업에서 소리의 개입은 2011년에 진행된 작업에서부터 시작된다.
강지윤+장근희의 작업 <보통의 시간 Ordinary time, 2011> 의 작가노트에 이런 부분이 있다
“우리는 안양유원지에서 들리는 물 흐르는 소리가 사람들을 풀어지게 하여 그런 개인사적인 이야기들을 서술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이 글에서 작가는 ‘물 흐르는 소리’를 낭만적 정서를 일으키는 감각으로 여기고 있다. 소리에 ‘낭만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작업 <진동 Vibration, 2012>에서는 규격화된 국제표준용지로 도시를 재현하고, 그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소리를 진동으로 전환한다. 여기서 소리는 폭력적 ‘낭만성’을 함유한다. 이렇듯 소리에 관한 ‘낭만성’은 <비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만 나타나는 갑작스러운 개입이 아니다.
이번 작업이 ‘낭만성’을 가진 음성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이것이 발화되는 형식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보통의 시간 Ordinary time>은 일상의 시각적 기념비로 해석할 수 있는 작업이다. 안양유원지(현재 안양예술공원)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수집된 주민의 일상적 대화는 작가들에 의해 ‘주옥같은 대사’로 재편집되고, 텍스트와 음성이 결합한 형식으로 특별히 제작된 스크린에 상영된다. 일상에 대한 존경으로부터 만들어진 기념비인 것이다.
하지만 <비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위와 같은 기념비적 맥락으로 읽어낼 수 없다. 기념을 위한 조형물은 그 목적에 따라 조형적 특성, 곧 눈길을 끌기 위한 시각적 기능을 갖추기 마련이다. 그 조형이 가진 정체성을 관람자에게 심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시각적 상징물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작업에서 조형성은 오히려 시각적 기능이 아닌 다른 기능을 위한 것에 집중되었다. 즉 이번 작업의 조형적 기능이라는 것은 첫째, 음성을 잘 울릴 것과 둘째, 음성이 가진 ‘비밀’이라는 내용적 특성¹ 에 맞게 형식이 보일 듯 말 듯 감추어질 것, 그리고 풀들과 조화를 이룰 것 등이다. 이런 조형적 특성은 이것이 곧 단순한 시각적 기념비의 형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장소적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노들섬, 대부도² 등 작업이 설치되었던 장소의 공통점은 관객의 시야를 가두는 틀이나 시각을 압도하는 건물 혹은 인공적 조형물이 흐릿하게 존재하거나 부재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들이 공공장소이기 때문에 가지는 진부한 공통점이 아니다. 시야가 확 트인 공간은 우리가 시각적인 특정한 예술작품에 집중하기 좋은 공간이 아니다. 군락에서 일시적으로 관객, 혹은 행인을 사로잡는 낭만적 감각은 바로 소리였다. 이것이 이번 작업에서 음성에 이어 주목할 형식에 관한 부분이다.

‘일시적 낭만성’을 발화하는 조형과 발음되는 음성은 모호한 공간의 틈 속에서 단순한 조형의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구성(formation)을 이룬다.


¹ 다른 사람들에게는 숨기어 공개되지 않는 것

² 작업이 설치된 두 번째 장소



▲ 비밀, 싱글채널비디오, 7분 5초



알레고리¹ 적 특성을 가진 비밀: 모두에게 당나귀 귀는 있다

비밀은 탄로나기를 기다리는 사건 혹은 내용이다. 누설되기 위해 존재하는 사건이자 숨기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숨기게 되는 알레고리를 창출하려는 충동을 가지고 있다. 혹자는 비밀이 숨겨지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이미 비밀은 단어 스스로 ‘어떤 이야기를 숨기고 있다’는 속성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맥락이 다르다. 결국, 파헤쳐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비밀이다. ‘비밀인데.’라는 언급과 함께 시작되는 대화는 비밀이라는 언어로 내뱉어짐과 동시에 숨겨져야 하는 알레고리적 특성을 가진, 발설되고 싶은 욕구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수집한 비밀은 어떤 의미심장한, 놀라운, 소름 끼치는, 스펙터클한 그런 비밀일까? 절대 알아서는 안 되는 그런 굉장한 이야기일까?

시시하게도 작가가 수집한 비밀은 우리 일상의 고민이었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본성,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는 우리의 속마음. 하지만 까발린다 해도 청부살인업자에게 살해당할 가능성이 단 1%도 없는 그런 일상의 이야기, 고민, 속삭임, 앙금, 울분, 죄책감. ‘비밀’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소 거창해진 개인의 고민, 그 고백의 음성은 거칠고 텅 비어 보이는 공간에 발화되며 ‘일시적 낭만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당나귀 귀, 즉 비밀의 틀에 갇힌 일상의 고민은 도시의 모호한 틈에서 발화되며 알레고리를 창출하려는 충동을 해소하고 있는 듯 하다.

 

¹ 크레이그오웬스(Craig Owens), 『알레고리를 창출하려는 충동 Allegorical Impulse: Toward a postmodernism』, October, Vol. 13. (Summer, 1980), pp. 58-80
이 글에서 저자는 ‘상징이 동기 부여된 기호라면, 그 반대의 것으로 이해되는 알레고리는 임의의 것, 인습적인 것, 동기부여되지 않은 것일 것이다.’ 라며 상징과 알레고리를 구분한다. ‘알레고리는 예술적 기법이자 예술적 태도이며, 예술적 과정이자 예술적 수용활동이다. 잠정적으로 알레고리를 개념 정의하자면, 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또 하나의 텍스트에 의해 중첩되는 모든 경우에 발행하는 그런 것이다. (중략) 알레고리적인 작품에 대해 적용되는 패러다임은 바로 (수정한 자국이 역력한) 거듭 쓴 양피지라고 이야기된다.’ 라고 서술하며 알레고리의 특성을 의미에 대한 약속을 보증하는 동시에 유예하는 모호성, 그리고 미완성적인 것과 긴밀한 연관성을 맺는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알레고리는 양가적 특징을 가지며 해체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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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ret _대부도 설치전경_2012



새로운 상황, 탈취된 비밀

“양식과 서명 안에 스스로 갇힌 오브제와는 상반되게, 현재의 예술은 예술적 제안이 예술적이든 아니든
다른 여타의 구성들과 맺게 되는 능동적인 관계와 만남 안에서만 형태를 이룬다는 것을 보여준다¹.

이번 작업은 공공장소에 설치되자마자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수집된 음성이 담긴 녹음기와 스피커(조형물 안에 숨겨져 있던)가 설치된 지 하루 만에 도난 당한 것이다. 이것은 <비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순수한 예술적 형식을 벗어나 다른 사건과 관계를 맺으며 이끌어내는 새로운 상황이다. 니꼴라 부리오가 말했던 예술이 맺게 되는 능동적 관계와 만남이라는 것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나아가 새로운 상황은 또 다른 알레고리들을 창출하기에 이른다.
나는 작가가 수집한 비밀이 공공장소에 발화하는 것으로서 누설되고 싶어하는 스스로의 욕구를 해결한다고 언급했었다. 그런데 여기서 ‘훔쳐짐’이라는 새로운 상황의 개입은 누설되길 원하는 비밀의 욕구를 또다시 모호하게 유예해 버리고 만다. 비밀은 누군가에 의해 탈취된 채 동시에 간직되는, 또 다른 알레고리적 비밀로 전환되는 것이다.
작가가 비밀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취하는 다정한 방식의 제스처 또한 알레고리의 확장에 단서가 된다. 다정한 제스처는 지인의 집으로 찾아가서 자연스럽게 비밀의 대화를 이끄는데 있다. 작가는 대화에서 더해지는 맞장구, 추임새가 대상으로부터 비밀을 이끄는 중요한 윤활제가 된다고 했다. 이 제스처는 비밀의 이야기를 깊어지게도, 혹은 방향을 전환하게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자연스럽고 살가운 ‘비밀 탈취’의 방법으로 볼 수 있다. 작가가 지인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탈취한 비밀이 다시 누군가에게 탈취되는 상황은 결국 ‘탈취된 비밀’에 대한 알레고리적 해석의 충동을 일으킨다.

¹ 니꼴라 부리오 Nicolas Bourriaud, 『관계의 미학 Relational Aesthetics』, 1998, 34pp



▲ 비밀인터뷰, 싱글채널비디오, 2분 10초

작업을 위해 작가는 소통의 방식을 고민했고, 이것은 예술작품을 위한 필연적 과정으로 개입되었다. 이 과정의 연속과 관계의 축적은 예술이 의미 있는 형식을 갖추고 특정 공간과 구성을 이루게 했으며, 이 구성은 능동적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상황을 이끌었다. 그 안에서 예술은 각각의 지점을 만들며 연결된다. 부리오는 이렇게 말했다. "형태는 서로를 잇는 요소이자 역동적인 응집의 원리이다. 하나의 예술 작품은 선ligne 위의 한 점이다."² 결국, 작가에 의해서든 누군가에 의해서든 탈취된 비밀은 새로운 상황을 잇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한 점'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글 / 현소영]

² 니꼴라 부리오 Nicolas Bourriaud, 앞의 책, 33pp

강지윤+장근희, 현소영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