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낭만의 순간 #3 단편선 ; 낯선증언, 도시 내 현장설치 / 2012
Romantic Moments #3 Short Stories ; strange Testify, Public Installation /2012

 

단편선01

▲ 단편선;낯선증언_삶의 증언들을 녹취한 관찰 장소 기록_2012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에서¹

 

차를 타고 강변북로 초입을 지나가다 보면 화력발전소 부근 도로와 이어지는 밑변이 짧은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공간이 있다. 이곳에는 가로등과 화살표 표지판이 설치된 것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것이 없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내려서 이곳을 걸으면 엉뚱한 자리에 검은 비석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높이는 약 20센티도 안돼 보이며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오각형의 검은 비석이다. 추측건대 도시계획의 목표로 진행된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한 일로 사고를 겪어 사망한 자의 비석이리라. 비석의 존재와 함께 연결되는 괴이쩍은 상황은 비석이 존재하고 있는 공간에 대한 재인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삶의 구체적인 공간인 '거리' 공간과 대비되는, 공공의 스펙터클로 표상되는 도시 고속화 도로에 사적인 성격을 지닌 추모비가 고착되어있다는 점이 그 재인식의 지점이다. 비석은 공공의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경계를 흐리는 기이한 물체로 기능하며 이 때문에 스펙터클은 괴상한 모습으로 가시화되고 보는 이를 몰두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강지윤의 작업<단편선;낯선증언> 과 연관하여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예술적 개입도 없는 실제 장면이다². 강지윤의 이번 작업 <단편선;낯선 증언>은 일상의 대화에서 추출한 표본과도 같은 낯선 증언을 3차원 글자 형태 그대로의 모습으로 떠낸 것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회색 바탕체 글자는 형태소나 단어별로 분리되어 있고 재료는 시멘트로 되어있다. 총 6개 시리즈의 증언은 짧은 문장이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익숙함을 가진 문장이다. 가령 "고기를 잡으러 가도 밑밥을 대야 한다." "남녀 관계 답이 없다." "빈 몸으로 왔다가 빈 몸으로 가는 게 사람이야" 같은 익숙하지만 경험적 입장에서 우러나는 독려, 충고 혹은 우쭐거림이 담긴 증언인 것이다. 이 시멘트 텍스트는 각각 서울 도심 내 6개의 장소에 마치 그 장소의 배경과 동화되듯 어슴푸레하게 고착되어있다. 도시에 화석처럼 굳어진 일상의 진부한 증언은 결국 공적 공간이 의무적으로 실행하는 시스템적 관리에 의해 혹은 우연한 관람자의 관심에 의해 천연하게 풍화되거나 사라진다. 마치 보통의 순간들이 기억되고 잊혀지듯이. 어떤 개인의 추모비가 사람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고속도로라는 공공의 공간에 눈에 띄지 않게 세워져 있었던 것은 강지윤의 조형 텍스트가 사람들이 스쳐 가는 도시의 길목에 어슴푸레하게 존재하기 위해 보호색을 쓰며 고착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우연한 관객은 뜻밖에 던진 시선에 의해 텍스트를 아주 우연히 마주칠 수밖에 없다는 점과 비슷한 어떤 지점을 공유한다. 이 실제 장면과 예술작업의 유사점으로부터 우리는 이런 의문을 끌어낼 수 있다. 공적, 사적 공간의 경계를 흐리고, 우연한 산책자가 의외의 상황을 목격함으로써 오묘한 전환을 맞닥뜨리게 하는 실재는 과연 어떤 것일까?

 

¹ 기 드보르(Guy Debord 1931~1994)가 제작한 영화 제목으로 1989년 2월 21일, 파리의 조르주 퐁피두 센터에서는 SI의 역사와 그들이 예술의 장에 남긴 작품들을 회고하는 전시회가 같은 이름으로 개최되기도 했다.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에서>Sur le passage de quelques personnes à travers une assez courte unité de temps (On the Passage of a Few Persons Through a Rather Brief Unity of Time), Guy Debord, short film, 1959

² 이 장면은 작가 장근희의 작업 <일상의 고역> 프로젝션 중에 마주친 상황이다. <일상의 고역>은 강변북로의 초입에 있는 아파트 방음벽에 프로젝션 되었다.



단편선02

▲ 단편선;낯선증언_고기를잡으러가도밑밥을대야한다_2012



한낮의 공원과 낯선 증언

강지윤의 작업<단편선;낯선 증언>에는 텍스트가 설치되는 6개의 장소 이외에 또 하나의 장소가 보이지 않게 개입되어 있다. 이것은 일상을 관찰하기 위한 고정된 장소로 작가는 이 장소에서 일상 대화의 표본을 고르기 위한 모집단을 얻었다. 이 고정된 장소는 바로 ‘한낮의 공원’이다. 관찰은 한낮의 공원에서 규칙적으로 진행되었고, 숨겨진 녹음기에 녹음된 ‘일상의 대화’들과 작가의 시선으로 기록한 ‘관찰일지’는 관찰의 결과물이자 일상 대화의 표본, 즉 사실적이지만 낯선 증언을 추출하기 위한 모집단이 된다.

위와 같은 작가의 관찰 방식과 훔쳐보기의 태도는 사적인 공간으로 대표되는 개인의 침실- 더 정확하게는 침대 위-이나 호텔 방에 있는 개인을 관찰하여 얻은 일종의 표본을 사진과 텍스트로 제시하며 일상을 의식화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진 소피 칼 Sophie Calle의 <잠자는 사람들 The sleepers>(1979)이나 <호텔 The Hotel>(1981)을 연상케 한다. 작업 <잠자는 사람들>에서 소피 칼은 타인에게 그들의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인 ‘잠’을 빌려달라고 요청하고, 그녀의 방에 초대하여 각각 8시간 동안 그들을 관찰했으며 작업 <호텔>에서는 실제 한 호텔에 객실담당 여종업원으로 취직한 후 일을 하는 동안 방안의 단서들을 통해 투숙객들의 사생활을 관찰하고 조사하기도 했다.

한국작가 리금홍의 <성북문화유산 제3-27호 림선옥 살던 집>(2011)은 고정된 공간이 가진 장소성과 역사성을 작업을 통해 재생하는 프로젝트로 한국사회의 과도기적 풍경을 간직한 성북동의 오래된 집을 관찰하고, 재해석한 흔적을 담아내고 있다. 리금홍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서 자신들의 시간을 쌓으며 살고 있음을 주목하며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성북문화유산 제3-27호 림선옥 살던 집>에서는 ‘어떤 이의 옛집’이라는 맥락에서 오래된 집을 ‘림선옥이 살던 집’이라는 가상의 설정을 통해 인물이 남긴 흔적을 일반에 공개하여 공간을 새롭게 재생했다.

소피 칼의 ‘침대’와 ‘호텔’, 리금홍의 ‘오래된 집’ 그리고 강지윤의 ‘한낮의 공원’은 고정된 장소라는 점과 이 안에서 작가가 일상의 삶을 관찰하고 있다는 점, 타인의 상실된 과거가 사진, 흔적, 관찰 일지, 대화텍스트 같은 증거적 결과물로 남겨진다는 점 등 유사점을 가진다. 하지만 소피 칼의 <호텔 The Hotel>과 리금홍의 <성북문화유산 제3-27호 림선옥 살던 집>의 경우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관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남겨지는 타인의 흔적, 증거물에 개입된 작가의 상상력은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흐리며 개인의 탈주체화를 경험하게 한다¹. 이는 강지윤의 관찰이 사적인 공간이 아닌 관리가 아주 잘 이루어지고 있는 공적 장소인 한낮의 공원에서 이루어진다는 점과 녹음된 대화와 훔쳐봄을 통해 도출된 그녀의 결과물-대화 표본 그대로의 조형 텍스트와 르포르타주식의 관찰일지-이 지극히 사실적인 증거물의 형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낮의 공원’이라는 공공의 영역에서 발설된 주관적인 일상의 단편은 작가에 의해 낯선 증언으로 객관화되고 다시 ‘길목’이라는 공공의 영역에 고착됨으로써 허구적 일면을 감지할 수 없는 일종의 낯설지만 익숙한 명언으로 인식됨과 동시에 새로운 상황을 맞는다.


¹소피 칼은 객관적 증거의 기능을 하는 사진에 주석•해석의 기능의 텍스트이자 문학적 기능을 하는, 소피 칼 자신이 작성한 텍스트 조합을 통해, 리금홍은 실재하는 공간과 실재하는 인물 그리고 작가가 설정한 가상의 인물을 위한 시나리오의 조합을 통해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리고 있다.

 



단편선02

▲ 단편선;낯선증언_무엇이나에게이득인가_2012



6개의 길목, 6개의 표본

강지윤이 작업의 설치장소로 6개의 길목을 선택한 것은 스펙터클의 지배로부터 일상생활을 구출할 것을 주장한 기 드보르와 상황주의자들이 실행했던 심리지리연구 형태와 닮아있다. 이것은 도시 속에 은폐되어 있지만, 일상적 경험 속에 내재한 혁명적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실험 영역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곳들을 ‘기존의 도시’에서 발견해 내는 연구이다¹.

표류(dérive)는 어떤 목적이나 방향을 잃고 헤맴, 정처 없이 돌아다님 뜻하는 말로 보들레르의 산책자(flâneur)로부터 그 근원이 있으며 현재까지 그 개념이 확장되어 많은 작품의 기저가 되는, 심리지리연구를 위한 기본적인 수단이다. 강지윤은 도시의 빈틈과 이 안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며 도시를 표류했고, 6개의 길목을 발견했다. 6개의 길목은 일상의 파편화된 순간이 매번 우리를 스쳐 지나가듯, 대중이 스쳐 가기만 하는 ‘거리’이다. 하지만 거리는 일상적인 것과 축제적인 것을 통합하는 특권적 장소이다². 순간순간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나듯 이 거리의 기능이라는 것은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유동적이며 방대하다. 추상적인 것이 가능하며 변형이 유용하다. 거리로서 기능하는 이 특권적 장소들은 동시대의 도시 경관이며 이번 강지윤의 실험실이자 조형 텍스트들의 무대이다.

설치된 6개의 조형 텍스트는 상황을 전환하는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상황주의자들이 주로 사용한 전용(轉用, détournement)의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다. 전용은 기존의 문화적 산물들을 이용해 새로운 관념들과 의미들을 산출하기 위해 원래의 맥락을 제거하거나 “재맥락화” 하는 실천을 지칭한다. 어떤 이미지나 텍스트를 원래의 맥락에서 추출해 다른 맥락 속에 병치시킴으로써, 원재료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이끌어 낼 뿐만 아니라 원래 의미의 그림자 역시 존재하게 된다³.

6개의 길목에 고착된 6개의 표본들은 대화의 맥락에서 추출한 낯선 증언의 한 구절로 새로운 공간의 맥락에 고착되었다. 공간의 한 귀퉁이에서 익명의 대중을 향해 낯선 신호를 보낸다. 텍스트들의 발원은 ‘한낮의 공원’에서 관찰했던 익명의 대중으로부터이고, 보임의 대상 또한 익명의 우연한 관객이 된다. 텍스트의 주체와 대상은 익명으로부터 발생하여 익명에 발설되는 구조로 탈중심화되어 있으며 지시적인 기능으로써만 존재하는 텍스트이기보다는 의미를 가진 자체의 조형물로 기능한다. 이 스스로 의미화하며 탈중심화된 조형 텍스트는 새로운 관계의 대상이며 순간의 상황을 전환하는 전용 실천의 핵심이다.

 

¹ 심리지리는 일상생활이 조절되고 통제되는 방식, 그러한 통제와 조작이 폭로되고 전복될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라는 보다 확장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정확히 바로 이러한 인식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그 ‘일상성’ 때문에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박노영(2002),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 이론 연구: 스펙터클의 도시 공간에 대한 비판과 실천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p.75

² 앞의 책, p.79

³ 앞의 책, p.7



단편선04

▲ 단편선;낯선증언_세상남녀관계답이없다_2012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수도 없이 많은 거리를 지나치며 살아간다. 거리는 일상에 자리한 아주 흔하고 진부한 공간이다. 우리는 계속 이곳을 산책하고,표류하고, 스쳐 지나칠 것이다. 대중의 대화 속에서 추출된 표본들은 모두 평범한 말이었다. 누구나 흔히 대화에서 말하고 들어왔던 것들,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대화의 일부분, 오히려 너무 범상치 않은 대화 속에 있어 금세 잊혀버리는 진부한 증언들이다. 목적지를 가기 위해 스쳐 지나가는 길목들이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익숙한 일상의 파편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이 표현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마치 보호색을 띠며 어떤 생명체의 화석이 된 듯이 길모퉁이 한 부분에 고착된 익숙지 않은 장면 때문이다. 먼지와 자갈, 잡초가 수두룩이 있어야 할 도시의 틈에, 우리가 스쳐 가는 길목에 우리가 진부하다고 여겨왔던 보통의 흔적들을 우연히 발견하는 것은 일상의 특별한 순간이다. <단편선;낯선 증언>은 일상의 삶 속에서 의식하지 못한 채 사라져가는 것들을 되살리고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 속에 함몰된 주체의 의미를 재발견하려는 시도이다.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어렴풋이 발언되는 낭만의 파편이다.

[글 / 현소영]


강지윤+장근희, 현소영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