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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이 / 2013
Strangers Unknown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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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는 사이 퍼포먼스 기록



모르는 사이 Strangers Unknown


처음 시작은 아주 평범한 장면의 목격에서였다. 운동장을 모두 한 방향으로 도는 한 무리의 사람들. 어느 누가 들어와도 감히 그 방향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조금 더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면, 왼손잡이나 오른손잡이에 따른 신체적 익숙함이라던가 하는 방식의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획일화된 흐름에 어떠한 의문점 없이 몸을 맡기는 낯선 이들의 풍경은 불시의 기이함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모티브를 얻은 <모르는 사이 Strangers Unknown>는 전연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고, 평범한 말들과 움직임을 작동시켜, 공동체라는 선을 위해 암묵적으로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의 실험이다. 그리고 그 합의점이 쉽게 무너지고 또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고, 변형되는 것을 의도하였다. 몇 번의 워크숍(<이로운 사이를 위한 피크닉>, <적당한 사이>, <몸으로 말해요>, <여-어느 대화>)을 통해 확인된 모습들, 즉,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공동의 선이라는 것은 사실 그 누구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없고, 개개인의 희생이나 포기의 토대 위에 있다는 것, 그렇다고 합리적으로 조율된 결과물도 아닌, 다소 우연적으로 생성되는 지점에 걸쳐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최종적으로 진행될 커뮤니티&리서치의 작업 <모르는 사이>는 5명의 워크샵 참여자를 대상으로 하며, 이들이 처음 조우하게 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워크샵은 도착한 참여자들이 주어진 빈 공간에 의자를 끌어다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다른 이들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도착하면서 자리를 잡으면, 또 그것에 맞추어 자신의 자리를 조정한다. 말하자면, 눈치를 보며 스스로 유지하고 싶은 간격을 벌리는 것인데, 뒤틀리기는 하였으나 결국 꽤나 평범한 모양의 오각형이 되었다.
약 30분동안 진행되는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자리를 정할 뿐 아니라, 나머지 4명의 모습을 관찰하여 기술하게 된다. 평소라면 눈 여겨 보지 않았을 타인의 사소한 움직임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다리를 직각에 가깝게 굽히고 앉아 있는 모양새가 특이하다던가, 걸음걸이가 신경질적이라던가 하는 것은 작정하고 바라보지 않는 이상 포착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말로 뱉거나 글로 적어놓지 않는 이상, 우리의 머리 속에 흐릿하게 스쳐지나가는 인상이며, 따라서 이 시간은 그런 평범한 찰나의 순간을 붙잡아두는 과정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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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분이 지나 자리가 더 이상 이동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최종 결정된 것으로 하고, 그 자리에서부터 일어나 형성된 5각형의 어느 한 지점으로 모이게끔 유도하였다. 사람들은 의자로 둘러싸인 한정된 공간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약 10여분이 지난 후에야 한 지점에서 만날 수 있었다. 크지 않은 공간임에도 10분이나 소요된 이유는 5명의 사람들의 행동 기준이 제각각 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A씨는 목표를 향한 행동력이 강한 타입으로 말은 하지 않아도 나머지 사람들의 행동을 독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B씨는 오각형의 모서리 부분만을 불안하게 겉돌며 좀처럼 남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C씨는 중반까지는 특이점이 없었으나 마지막 순간에 최후의 한 발을 내밀지 않은 인물로써 모두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결국 어느 시간이 지나자 C씨는 자신을 어느 정도 설득하여 마지막 한 발을 내밀수 있었고, 그 사이에 나머지 네 명은 각자의 방식으로 C씨를 배려하거나 유도하는 듯 했다. 어찌됐든 C의 마지막 한 발자국으로 비로소 모든 사람들이 한 점으로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불편할 만큼 옹기종기 모여 선 이 지점에서 '자신이 편할 수 있는 만큼, 한 걸음 뒤로 물러서'라고 요청했다. 이 세 가지의 움직임(처음에 정한 자리, 다가가서 만들어진 지점, 물러난 한 걸음)에서 나온 물리적 기준들은 후에 퍼포먼스를 위한 무대 설치에 필요한 치수로 환산되었다.
이 짧은 움직임이 끝난 이후, 사람들은 자신이 움직였던 기준과, 타인을 움직이게 했던 기준 따위를 추측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짧고 평범한 움직임이었지만, 평소 자신의 행동 양식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과 공간,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의 기준을 포기하며 상대방의 기대에 적절하게 반응해야 하는 부담감 같은 심리적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여자들의 움직임이 작동하는 방식을 포착하여 퍼포먼스로 재구성한다.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2010년 협업한 이후로 우리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는데, 구두로서는 해결되지 않는 합의점을 찾는 둘만의 방식으로 익숙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동작들은 대부분 걷는 시간이 긴 평범한 동작이며, 오히려 설익은 몸이 서로의 움직임에 긴장하며 반응하게끔 하는 장치가 된다.
이런 과정들을 기록한 <모르는 사이>는, 타인과의 관계망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실험해 보고, 그렇게 형성된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합의점을 미심쩍은 눈으로 의심하여, 평범한 움직임에서부터 새로운 시도를 더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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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이 워크샵 걷기의 기록



<모르는 사이>, 그 이후


<모르는 사이>는 다른 사람의 걸음에 맞춰 걷는 것에 대한 기록이다. 각자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뒤틀린 오각형의 평균대 위에서 걷는 것은 그다지 대단한 기술을 요구하는 일은 아니다. 숙달하기 위해 훈련을 거쳐야 하는 것도, 순서를 틀리지 않게 암기를 해야할 것도 없다. 오히려 우리는 리허설을 최소한으로 하기를 원했다.

우리가 퍼포머들과 나누었던 대화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문답은 이런 것이다.

"이거는 이렇게 해야 하나요?"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아시잖아요. 그냥 그 상황에 맞게 잘 하시면 되요"


농담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정해진 것이 없으니, 그 상황에 맞게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퍼포머 참가자를 모집할 때, 유일한 조건 - 전문적인 무용수나 연기자가 아닐 것 - 역시 마찬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는 그들의 몸이 덜 훈련되어 있고, 자신조차 낯설어서 평범한 걷기를 하면서도 자신의 몸을 새롭게 읽을 수 있기를 바랬다. 물론 타인의 움직임도.
하지만, 그 평범한 걷기에는 예상치 못한 자신의 감정, 혹은 욕망 외에 많은 것들이 관여된다. 예컨데, 퍼포머A씨는 계속해서 자신의 막대를 가장 아래에 놓이도록 하였다. 의도적인 것인지, 혹은 본능에 따른 무의식적인 움직임인지 아직 가늠이 되지 않는다.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체격이 좋은 그는 아마도 자신이 그 무게를 지탱해야한다는 사명감 비슷한 것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리고 A씨가 지쳐갈 때쯤, 다른 남성 B씨가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일정한 합의에 의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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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에 집중해서 이야기하자면, 사람들은 자신의 속도를 늦추거나 빨리하거나 혹은 멈춰서기도 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한다. 처음 워크샵 단계에서는 길이가 제각각인 평균대 하나를 같은 시점에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럼 그 길고 짧음에 의해 서로의 속도가 맞춰지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이 훈련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그 규칙을 없애고 자율적으로 걷는 것을 실험했더니, 원래 의도했던 그림이 나왔다. 사람들은 규칙이 없어도 그렇게 서로 맞춰가면서 걷고 있었다.
사람들은 평균대를 걸으면서 들고있던 막대를 허공의 한 지점에 맞춘다. 그들이 들고 있는 막대 또한 길이가 제각각인데, 약 일미터 남짓한 것부터, 들고있는 이의 키를 훌쩍 넘는 것까지 다양하다. 이 길이는 사실 일전의 워크샵에서 관찰 기록된 그들의 움직임과 관계가 있다. 이 지점은 그들의 움직임에 의해 오르락 내리락 하며 계속 변화하다가 어느 순간 그 접점이 흐트러지고(실수이든, 의도이든), 바닥으로 떨어진다.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가 울려퍼진다. 우리는 이 지점을 일종의 합의점, 공동체의 목표 같은 걸로 상징했는데,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 배려하거나 양보, 혹은 희생하거나 눈치를 보며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은 계속해서 무너지고 실패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새로운 합의점을 만들고 또 이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공동체의 합의 혹은 목표라고 하는 것은 우연적인 결과 외에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걷는 방식 자체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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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이의 퍼포먼스 기록



▲모르는 사이 퍼포먼스 기록 편집, 단채널비디오, 2분 12초




▲모르는 사이 퍼포먼스 기록, 단채널비디오, 5분





KKHH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