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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순간 #2 일상의 고역 @ 특정지역에 프로젝션 / 2012
Romantic Moments #2 Drudgery of everyday life, Public Projection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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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의 고역II_2012.5_미디어 퍼포먼스_마들로 부근 쓰레기 집하장



 

일상, 권력의 체계를 넘어서는 그것

 

한화 63시티(63빌딩)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거대한 도시풍경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선은 공간을 가로 세로로 점유하고 있는 여의도 아파트 단지 위로 하강하고 이내 거대한 LG 트윈타워(쌍둥이 빌딩) 위로 솟아오른다. 이때 시선의 초점은 두 빌딩으로 분산되나 곧 빌딩 사이로 보이는 마포대교를 따라 수평선을 이으며 한강 위를 달린다. 잠시 한강의 장엄한 흐름을 바라본다. 수직구조로 즐비하게 들어선 건물들과 수평 구조로 한강을 잇는 다리들은 거대한 직물구조로 엮여 우리의 시선을 장악한다. 도시를 장악하는 수직선의 파도는 한강으로 잦아드는 것 같지만, 또다시 새로운 수직건물들의 혼란으로 연결되고 만다. 수직과 수평으로 짜인 거대한 직물도시는 과거와 현재가 켜켜이 쌓인 지층의 파도와 같다. 이 지층의 파도 속에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모호한 어떤 공간들이 존재한다. 작가 장근희는 일상에서 엿듣기 방식을 통해 채집한 대화의 음성을 텍스트로 변주한다. 음성의 텍스트는 심야에 화려하게 빛나는 네온사인처럼 고가도로 밑에 존재하는 잔여 공간, 강변북로 진입로에 있는 도로와 아파트 사이에 존재하는 공터, 철도와 야산 사이의 공간, 그리고 쓰레기 집하장 전면에서 모뉴멘탈하게 투사된다. 작업 <일상의 고역>에서 구조물이나 자연의 전면에 투사되는 텍스트의 배경은 도시 속에서 음산하게 혹은 야생적인 모습으로 그 모호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장소이다. 언뜻 그 정체성이 의심스럽지만, 작가의 말처럼 이 공간은 사유지가 아닌 공적 공간이자 어느 구석에서 장소의 몫을 해내고 있는 곳, 쉽게 지나치며 흘러가는 시간성을 가진 일상의 대화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특별할 것이 없어 흐릿하게 인식되는 보편적 일상성이 머무는 공간이다. 조각난 층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치환과 효과의 시리즈로 구성되는 것, 그리고 이러한 움직이는 켜들 위에서 유희하는 것으로 일상이 존재하는 엄연한 공공의 장소인 것이다. ¹

 
¹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소는 다양한 부재들의 현존과 같다는 점에서 놀랍다. 보이는 것은 거기에 더 이상 없는 것을 가리킨다. "너도 보다시피, 여기에는 전에……있었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자신을 명백히 드러내는 것들은 '볼 수 있는 것의 보이지 않는 정체성'을 가리킨다. 조각난 층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치환과 효과의 시리즈로 구성되는 것, 그리고 이러한 움직이는 켜들 위에서 유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한 장소에 대한 정의다. Michel de Certeau, "Walking in the City", 김용호 옮김, 문화, 일상, 대중(문화에 관한 8개의 탐구), 2007, p.180



권력의 감시체계: 도청의 판옵티콘

장근희의 작업에서 주목해야 하는 제스처는 일상의 대화를 채집하고 있는 작가의 방식에 있다. 그녀는 도청, 엿듣기와 같은 과거 권력의 감시체계로 대변되는 다소 낯설고 괴이쩍은 장치를 이용하고 있는데 이런 인공적인 장치가 일상에 침입하는 과정은 조심스럽지만, 적극적이며 때론 도착적이기 까지 하다. 작가는 특정 무리에 속해 동의를 구하지 않고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방식, 스치면서 지나가는 타인의 대화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일상에 조용히 침입했다. 수집된 음성 대부분은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들이다. 대화는 대부분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며 하는, 혹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 술을 한잔 마시며 나누는 담소들로 주로 밤에 도청되었다. 작가는 일상의 대화들이 발화되는 공간에서 여느 때처럼 일상을 함께 소비하는 친구, 손님, 직장동료, 선배, 타인처럼 또 다른 개인인 듯 잠입해 있다. '도청'이라는 감시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는 개인을 감시하고 일상을 지배하려는 권력을 대표하는 입장으로 보인다. 또한, 그녀가 사용하는 이 인공의 장치는 판옵티콘¹ 의 감시체계 망을 더욱 촘촘히 조이는 것으로 일상의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침입하여 더 이상 개인이 감시체계를 벗어날 수 없도록 하는 극단적 규제를 표상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작가의 태도는 폭력적이고 권력화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도청된 일상의 대화를 뚜렷한 목적이나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공공의 장소, 실질적으로 투사되는 텍스트를 읽는 능동적 독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소외된 장소에서 모뉴멘탈한 방식으로 투사한다는 것은 예상 밖의 상황이다. 왜 공공성의 권력을 표상하는 자세를 취한 작가는 능동적 대중을 피하고 있는가? 왜 대화를 그저 스쳐 지날 수밖에 없는 시간성을 가진 곳에서 발화하는가? 텍스트의 환영은 공공장소의 구조물, 자연을 덮는다. 일상의 대화들은 자기 과시적으로 장소를 점령한다. 권력을 상징하는 듯 한 태도를 취했던 작가는 오히려 일상의 대화에 우위를 두고 이것이 소외된 공공장소를 점령하는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일상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전복한다. 권력을 위장했지만 이것은 곧 일상을 존경하는 태도로의 변화로 이어지며 권력을 와해시키는 해체자로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¹ 판옵티콘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컴퓨터 통신망과 데이터베이스를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 또는 침해하는 대상으로 비유하여 사용한 말이다. 미셸 푸코는 현대사회의 권력은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으며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동안 작용한다고 했다. M. Foucault, "L'Oeil du pouvoir", in J. Bentham, Le Panoptique, Paris: Belfond,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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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의 고역I_2012.5_미디어 퍼포먼스_당인리 화력발전소 강변북로 방면




일상생활의 전술: 발화의 수사학

<일상의 고역>에서 투사되는 텍스트들은 어느 주점에서 수집된 대화의 한 부분의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다. 한 여성의 "흠!! 그럼 과연 내 인생을 정말 즐겁게 생각할까?"라는 모호한 질문을 시작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기질'을 숨기고 살아가는 현실과 이런 억압된 기질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문제들을 이야기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상대에게 대화를 유도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제각기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발화한다. 무의미한 일상에 대한 탄식을 하기도 하고, 반대로 삶을 지키기 위한 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을 일상의 순응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상의 숭고함을 논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개인이 가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서 오는 고역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이 대화의 결론이다. 이 진지하던 대화는 "가죠? 화장실 가야겠다."라는 말과 함께 끝이 난다. 대화에는 일관적 주제나 구체적 내용이 없고, 상대방과 일정 거리를 둔 채 보여줄 수 있는 피상적 대화인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말대로 흔하디흔한 일상의 대화이다. 작가의 편집이 있기 이전에 대화 자체는 발화자들에 의해 편집되어 발설되는 음성들이다. 이 일상의 대화는 목적이 없는 듯이 거니는 산책과 같다. 미셀 드 세르토 Michel de Certeau는 그의 글 "도시 속에서 걷기 Walking in the City, 1984"에서 걷는 행위와 도시 체계와의 관계는 발화와 언어 체계(랑그) 혹은 언표된 진술들과의 관계와 같다는 J.Searle의 글을 참조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걷기가 보행자 측에서 행하는 지형학적 체계의 전용과정이듯 발화는 말하는 자가 언어체계를 떠맡아서 전용해 쓰는 과정과 같다. 그리고 걷기가 도시 속 차별화된 위치 간의 관계, 즉 움직임의 형태에 관한 실용적 '계약' 관계를 포함하듯 발화는 '대화'이고 그 '상대방을 설정하며', 말로 소통하는 사람들 사이의 계약을 작동시킨다. 발화행위 ¹ 는 산책을 통해 걷는 이가 자신만의 공간을 결합해 '우연적인', 혹은 '불법적인' 공간의 '맵시'를 꾸며내듯이 대화의 수사학을 발휘하며 언어체계 내에서 내밀한 창조성을 구성한다. 특히 위 대화에서의 수사학이란 인생의 즐거움에 대한 질문이 개인의 기질, 무의미한 일상, 삶의 투자, 일상의 숭고, 괴리감, 일상의 고역으로 이동하며 내용과 언어가 변용되는 데에 있다. 발화의 수사학이 작동한 것이다. 이렇게 별 목적이나 의미 없이 흐르는 대화는 권력의 감시체계를 무색하게 한다. 도청은 무수히 발화되는 일상의 대화를 여과 없이 저장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일상 대화의 홍수에 의해 고유 기능의 목적을 상실하고, 정복당하고 만다.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개념도시² 의 체계를 거스르는 힘으로 판옵티콘의 감시를 뛰어넘는다. 이것은 창조적 실천성이자 약자가 강자를 이용하는 천재적인 일상생활의 전술이다.

 

¹ 발화는 언어 체계의 영역 내에서 작용한다. 화자가 언어를 전유하고 재전유 하도록 한다. 그것은 특정 시간과 장소와 관련된 현재를 정초한다. 그것은 장소와 관계의 망 속에서 타자와의 계약을 가정한다. 발화의 목표는 이용자들이 스스로의 이해와 기준에 맞추기 위해 지배문화 경제의 내부에서부터 수많은 사소한 변형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가정한다." Michel de Certeau, "General Introduction", 정준영 옮김, 위의 책, p.180
² 변형과 착취의 장소이며 다양한 간섭의 대상이지만, 새로운 속성들로 끊임없이 풍성해지는 주체이기도 하다. 그것은 기계이며 근대성의 영웅이다. Michel de Certeau, "Walking in the City", 김용호 옮김, 위의 책,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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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고역III_2012.5_미디어 퍼포먼스_1호선 월계역 방면



공공성의 소멸 그리고 일상의 복권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했을 때 우리는 가진 것을 원해야 한다. 알다시피 나는 점점 더 작고 거의 보이지 않는 쾌락, 작은 여분의 것에 기대어 왔다. 당신은 이런 작은 세부를 가지고 우리가 얼마나 거대한 것이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자라는지 믿을 수 없을 것이다."¹ 일상의 대화는 화려한 색의 텍스트로 조형화되어 황량하게 쌓인 쓰레기 더미 위에서 음성의 리듬감과 함께 투사된다. 일상생활의 전술로서의 대화가 가지는 창조적 실천성을 기념하려는 듯 텍스트는 마치 화려한 미래 공상과학 영화의 오프닝처럼 빛, 색, 리듬을 변주한다. 실재하는 공간이자 시간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일상의 장소, 능동적 관객이 존재하지 않지만 공공성을 가진 장소, 제약과 강박적 목적을 가진 감시체계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일상의 대화, 변용되는 언어, 발화 방식은 공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강자로 군림하려는, 실재를 왜곡하려는 공공성의 신화를 소멸시킨다. 동시에 일상은 기념적 발화를 통해 저평가 돼있던 가치를 찾는다. 일상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존재하는 영역이다. 무한하게 확장하며 규제할 수 없는 창조력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약자인 것 같지만 그 어떤 것에도 지배당하지 않는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의 고역> 은 일상에 대한 존경이고 그 권위의 복권이다. [글 / 현소영]

¹ W. Gombrowicz, Cosmos, Paris: Gallimard Foilio, 1971, pp.165~68

▲ 일상의 고역, 싱글채널비디오, 4분 27초



강지윤+장근희, 현소영 / 2012